[씨네마 브런치] 허영심이 만든 판타지…파인다이닝의 위선을 가감없이 드러내다

입력 2023-05-11 18:14   수정 2023-05-12 02:33


누구나 판타지는 있다. 빈틈없이 잘 짜인 고급스러운 가구와 조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마치 왕이나 귀족이 된 것 같은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이전에 결코 맛보지 못했던 환희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음식을 음미해 보는 것.

파인 다이닝이란 서비스를 찾는 이들이 원하는 판타지다. 요리사에게도 판타지가 있다. 번쩍거리는 고급 주방 기물과 최신식 요리 장비로 둘러싸인 주방에서 말 한마디면 목숨도 내어 줄 듯 헌신적인 스태프와 구하기 힘든 진귀한 식재료로 예술작품 같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 한 점 집어 먹을 때마다 연신 탄성을 지르며 셰프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파인 다이닝 신(scene)은 최상의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이들과 최상의 서비스를 개발하기 원하는 이들의 판타지가 서로 만나 만드는 세계다. 황홀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들은 마치 록스타와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이에 열광하는 고객과 평론가, 셰프를 동경하는 이들의 열망은 파인 다이닝 신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이다.

영화 ‘더 메뉴’는 파인 다이닝 신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위선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한 끼에 180만원이나 하는, 외딴섬에서 진행되는 디너에 12명이 초대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돈을 내고 식사하는데, 굳이 셰프의 초대가 필요하다는 설정부터 묘한 불협화음을 예고한다. 모든 걸 기획한 슬로웍은 이미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한 스타 셰프다. 고압적인 태도로 군대 같은 스태프를 통솔하며 시종일관 손님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고객의 즐거움이 아닌 스스로의 허영과 자기만족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마치 스스로를 록스타나 예술가로 규정하는 도도하고 오만한 셰프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다.

저녁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은 알고 보니 셰프가 엄선해 고른 ‘식재료’다. 자신의 신성한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더럽힌 진상 중의 진상을 한 자리에 모았다. 셰프가 만든 요리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단지 재력을 과시하고 외도할 요량으로 레스토랑을 자주 찾아온 사업가, 마찬가지로 셰프에 대한 존경이나 음식에 대한 존중 없이 값비싼 음식을 먹고 으스대는 데만 관심이 있는 졸부, 셰프와 음식에 대한 열렬한 팬이지만 쓸데없이 아는 척하며 요리의 신비로움을 앗아간 자칭 미식가 등이다.

슬로웍은 자신의 존재를 있게 했지만 존재감을 산산조각 낸 이들과 동반 자살함으로써 부조리에 종지부를 찍을 계획을 세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인 셈이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존재가 등장하면서 인물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게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다. ‘더 메뉴’는 비뚤어진 요리사와 허영심 가득한 고객이 만들어낸 파인 다이닝 신의 비극을 날카로운 풍자로 빚어낸다.

어떤 형태로든 서비스업계에 종사하고 있거나 파인 다이닝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도 전, 이미 마음속으로 기립박수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슬로웍의 행위를 통해 ‘더 메뉴’는 결국 원초적인 질문을 두 가지 던진다. 요리사는 무엇을 위해 요리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 해주는 요리를 먹는가. 사실 답은 너무나 뻔하다. 행복이란 답 대신 허영과 자기만족이란 ‘오답’이 들어설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장준우 셰프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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